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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6 17:24, 논평 스크랩
[오마이뉴스 김경수 기자]
<디워>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디워> 신드롬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 기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디워>를 혹평했던 평론가들에게서 시작되었다. <디워> 개봉 전·후에 평론가들의 평들을 모아보자. "700억짜리 파워레인저가 300억짜리 루즈를 바르고 70년대 청계천의 미국식 토스터기를 만든 것과 같은 아동영화를 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극장을 나오는 길에 oh, my God!을 외쳤다." 몇몇을 뺀 대부분의 비평은 유례가 없을 만큼 신랄했다. 아니 참혹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참혹함이 영화를 살렸다. 사실, 영화 개봉 전까지 만해도 <디워> 팬은 감독 심형래의 의지를 높이 산 괴수영화 마니아층 뿐이었다. 그 마니아층들이 기자시사회 이후 쏟아진 참혹한 비평에 격분, 비평에 대한 반론들을 각자의 블로그들에 실어댔고, 똑같은 평론가가 우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졸작들에 대해 남겼던 선한 평까지도 찾아내 <디워>에 대한 악평과 비교하면서 큰 이슈로 발전하더니, 어느새 관객들과 평론가라는 희대의 웃지 못할 전투장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전선이 <디워>에겐 차라리 행운이었다. 그 논란으로 <디워>에 대한 혹평들이 일반 관객들에게까지 모두 알려졌고, 관객들은 영화에 대한 기대 수준을 현격히 낮추어, <디워>로서는 그저 평론가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유한 파워레인저 수준만 넘으면 관객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아주 손쉬운 게임이 되어버렸다. <디워>를 본 관객들의 평은 극명하게 갈린다. 현란한 CG에 찬사를 보내거나 인간 심형래의 의지에 감동하는 한쪽 편과 단순한 연출과 미흡한 연기력 그리고 빈약한 시나리오와 튀는 편집을 얘기하는 또 다른 한쪽 편으로. 하지만 양 편의 일반 관객들이 공통되게 말하는 부분은 <디워>라는 영화가 개봉 전부터 그렇게까지 처참하게 욕을 먹고 간판을 걸자마자 내릴 만한 영화는 절대 아니라는 거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자면 평론가들의 말처럼 <디워>의 스토리조합은 조악했고, 연출은 너무 일차원적이었으며 이무기를 뺀 나머지 연기자들의 연기력은 하품할 수준이었다. 그래도 <디워>에겐 그 모든 결점을 상쇄할 뭔가가 있었다고 보는 게 일반 관객들의 눈이다. 관객들은 이미 평론가들 덕택에 <디워>에게 감동과 철학을 기대하지 않는다. 심오한 철학까지 담긴 매트릭스나 진한 휴머니즘까지 깔린 <터미네이터2> 같은 SF영화는 아예 꿈도 꾸지 않고 영화관을 간다. 그저 화려한 볼거리들 사이에 신기한 이무기가 덥고 짜증나는 일상의 스트레스만 풀어줄 수 있기만 기대할 뿐이다. 그렇게 지루했던 한 시간여의 서사가 끝나갈 즈음 <디워>는 정확하게 관객들이 기대했던 것들을 보여준다. 화려하다 못해 놀랄 만한 영상들을. 언제나 스토리텔링에 심혈을 기울이는 기존의 한국 영화들과 심형래 감독의 <디워>는 태생부터 다르다. <디워>는 기존의 한국영화와는 다르게 스토리 보다는 볼거리에 더 초점을 맞춘 오락영화다. 그 다른 점이 기본기까지 운운한 평단의 혹평을 불러왔고, 또 그 다른 점에 신기하게도 관객들은 박수를 쳐주고 있다. 현재까지 보이는 여론의 속내는 어찌 보면 한국관객들이 충무로의 천편일률적인 스토리텔링에 식상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방학이든 명절이든, 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호시탐탐 칼부림할 찬스만을 노리는 조폭들이 아니면, 누가 죽던지, 혹은 누가 병에 걸리거나 그도 아니면 경제력 차이로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그려내는 신파물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스토리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한국영화들. 그리고 한 번 터졌다 하면 재탕, 삼탕하여 원작의 신물까지 울궈먹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영화계 습성과 그들의 영화 간판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에 그에 대한 의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500년 만에, 승천하고자 빌딩숲을 헤짚어 대는 이무기의 활약은 엉성한 편집과 연출이라도 관객들에겐 차라리 참신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그게 관객들만의 잘못일까? 이야기 구조만 짜임새 있고, 기승전결이 확실하다고 해서, 한두 편도 아니고, 매번 그 타령이 그 타령인 영화들을 관객들에게 보라고 강요하는 게 차라리 더 큰 잘못이고 더 큰 억지는 아니었을까? 올 여름 시즌 이후에도 조폭들을 그린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데, 그럼 그 영화들은 기승전결이 확실하기만 하면, 모두 좋은 영화들이 되는 거니까 관객들은 봐줘야 하나? 영화는 애국심의 경연장이 아니다?
여긴 도대체 어딘가? 한국인가 할리우드인가? 한국 영화에 외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니까 한국 영화 현실까지 덩달아 미국이 되어버린 건가? 아님 영화를 본 사람들이 전부 미국사람들인가? 도대체 한국영화가 언제부터 애국심을 제외하고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나?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스크린쿼터 얘기는 진부하니 하지 말자. 대중들의 애국적인 감수성을 자극하기 위해 영정까지 들고 시위를 하던 영화배우들의 얼굴이 너무 선명하긴 하지만, 그 얘기는 너무 커다란 얘기이니 논외로 치자. 하지만 월드 스타 강수연부터 <밀양>의 전도연까지, 여배우들의 해외영화제 수상 때마다 영화팬들이 보내준 박수는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었던가? 임권택 감독부터 박찬욱 감독까지, 그들이 세계 거장의 반열에 오를 때마다 뛸듯이 기뻐해준 한국 영화팬들의 마음 저변은 애국심 말고 다른 게 또 있었나?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애국심이 아닌 다른 마음에서 해외에서 흥행하길 우리가 바랐었나? 한류 붐을 타고서라도 우리 영화가 아시아지역에서라도 조금 더 인기가 높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애국심 말고 그럼 무엇이었나? <디워>에 대한 비판의 논리대로라면 지금까지 영화팬들의 마음도 모두 잘못이 되나? 지금까지는 내내 애국심을 방패삼았으면서 왜 하필 <디워>에게만은 애국심을 거두라 하나? 이건 좀 우스운 차별 아닌가? 개그맨 심형래는 강자였다. 국민 개그맨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온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다른 한편, 영화 쪽에서의 모습은 약자 아니었나? 아니 약자라기보다 차라리 6년 전 심형래는, <용가리>와 '신지식인 1호'라는 꼬리표로 전 국민의 조롱거리였던 게 사실 아닌가? 700억(순제작비 300억)을 펀딩 받더니 그 전의 과거들은 전혀 잘못된 사실이 되나? <용가리>의 처참한 실패와 '신지식인 1호'라는 조롱으로 온 국민의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았음에도, 절치부심 6년 만에 <디워>로 돌아온 건,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전무한 SF장르의 영화를 올곧게 지켜와 성과물을 내어준 건, 결과물을 평가하기 이 전에 인간으로서 박수쳐줄 만한 일 아닌가? 왜 영화인들은 아니 영화계 언저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심형래 감독에게 인색하기만 할까? 이러니 평론가들에게 반대하는 관객들의 목소리들이 커지다 못해, 실체를 알 수도 없는 충무로 음모론이 나올 수밖에. 개봉 3일만에, <디워>에 대한 비판을 하면 융단 폭격당하는 한쪽 방향으로 쏠리는 사회현상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신기한 일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디워>에 대한 평론가들의 천편일률적인 비판은 괜찮았고 그들의 비판에 대한 대중들의 반박은 그대로 폭격이 된다고 한다. 그럼 영화에 대한 비판은 영화인들만의 것이라는 얘기인가? 관객들은 조용히만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은 신기하게, <디워>를 비판한 자신들의 글에 달리는 인터넷 댓글들이, 지나쳐서 무섭기까지 하다고 얘기하면서, 자신들은 그보다 더욱 날선 단어들을 교묘하게 조합하여 공격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비판만 당연하고, 정당하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급기야 어느 틈에 자신들은 용기있다고 자찬한다. 참 이기적이고 편하기 만한 아전인수다. 그래도 <디워>에 대한 비판은 쉼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제발 <디워>가 거둔 성과물들은 인정하고 비판하자. 비판만으로 쉽게 잊어버리기엔 <디워>가 해낸 시도는, 이룩해 놓은 기술력은 아까운 한국 영화의 재산이다. 비판은 발전을 담보로 해야 건전하다. 영화인들이 내어 놓는 <디워>에 대한 비판이 건전해지려면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고민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고, <디워>가 쌓은 영화적 자산도 포용해서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모습도 함께 보여야 할것이다. <디워>는 조악했다. 하지만... 다음달 중순이면 미국 1500여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한국영화 <디워>. 할리우드 공세에 밀려서 언제나 침체되고 언제나 위기라고하는 답답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시사점을 주는 바는 전혀 없을까? 익숙하다 못해 헤질만큼 남루해진 신파와 조폭들을 마르고 닳도록 그려대는 한국 영화계에 500년마다 환생하는 여의주를 품은 여성은 조금이나마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제공하진 않을까? 관객들의 <디워>에 대한 열광은 비평가들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열광이 잠들지 않는 건 <디워> 내부에도 충분히 봐줄 만한 현란한 볼거리가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미, 발빠르게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에 심형래 감독의 CG가 더해지는 그날을 영화인들보다 먼저 가슴 설레며 상상하고 있다. 어쩌면 <디워>를 둘러싼 논란들을 잠재우기 위해선 거꾸로 관객들이, 통 크게 비평가들을 위해, 감독 심형래의 영화 <디워>는, 그 영화의 연출은, 연기력은, 편집은 그 영화가 이룩한 CG에 비해서 형편없었다는 걸 관객들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해줘야 할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관객들은 평론가들과는 다르게 <디워>에게 더 큰 박수를 쳐주고 싶어한다고 함께 말해주자. 우린 이미 <디워>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디워>가 이제 시작한 첫걸음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첫걸음을 뗀 아이에겐 매보다는 칭찬과 박수가 더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디워>에게 박수를 쳐준다고 먼저 말을 해주자. 그리고 심형래 감독에게 덧붙이는 부탁 한마디. 영화 홍보와 관객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무대인사까지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탁하건대 심형래 감독은 지금부터의 스케쥴을 모두 접고 작업실로 돌아가 <디워>의 재편집과 CG 수정에 매진했으면 싶다. 인간 심형래에 대한 호감과 한국영화라는 자긍심으로 영화를 보는 데도, 눈에 걸리는 장면들이, 답답한 설정들이 <디워>엔 실은 많아 보였다. 미국 개봉 전에 재촬영은 힘들더라도, 편집이라도, CG 수정이라도 다시 한 번 해줬으면 좋겠다. 우린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드는 <디워>를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우린 벌써 영화의 본고장 미국에서 하늘높이 승천하는 이무기를 상상하고 있다. <디워>를 미국 하늘에서 용으로 승천시키는 일, 그게 감독 심형래가 할 수 있는, 한국 관객들에 대해 할 수 있는 진정한 보답이다. 뉴스게릴라들의 뉴스연대 -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2007/02/22 18:24, 논평 스크랩
베스트의 부부강간죄에 대한 글을 읽어 보았다.
너무 무섭다. 그 법 자체의 파급 또한 우려되지만, 그 법 뒤에 도사리고 있는 그 이면은 더욱 무섭다. 여성에겐 성선설을. 남성에겐 성악설을.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사과 따먹은 것에 대한 반동일려나. '가정'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불신,분노를 가속화 시키는 저 뻔뻔한 관념, 너무 무섭다. 일련의 퍼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퍼즐이 점차 완성되어 가고 있다. 생리 할인.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경제적 가치 환산 시도. 생리 휴가.(유급제에 대한 주장) 호주제 폐지. 성무고죄 남발. 부모 성 골라 쓰기. 성특법. 부부 강간죄 도입 시도. 그리고 여성부와 여성계의 부적절하고 부정한 행동과 발언들. 등등. 이러한 피쓰들이 차곡 차곡 그 아귀를 맞춰가면서 이 죽일 놈의 퍼즐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 그 아귀를 맞추는 법칙은 너무나 이기적인 한국형 변질 페미니즘에 기초한다. 우리는 이 퍼즐의 완성형을 짐작해 보아야 한다. 위의 일련의 관념들에 동조하는 사람은 유토피아를 꿈꾸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전 한국 여성의 창녀화가 다가오고 있다. 여성의 가치가 급하락한다. 여성의 가치가 저러한 형태의 금전적,제도적 실질적 이득으로 교환 됨으로써 여성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배려는 사라진다. 저 퍼즐이 완성되면, 사회,문화적으로 여성들은 창녀 대접을 톡톡히 받게 될 것이다. 남성은 여성의 노예가 된다. 남성에게 가해자,악.이라는 원죄를 뒤집어 씌워 지지 않아도 될 죄책감을 추궁할 것이다. 그리고,성을 이용해 (앞의 창녀 대접과 일맥 상통한다) 남성을 조종하려 할 것이며, 협박을 할 것이며, 주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남,여의 완전한 대립 구도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화합.이해.존중.배려 등의 플러스적인 관념은 없다. 괴뢰군보다 무서운 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이 아닌. 사회 대 사회.혹은 사회 대 개인의 관념적 현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중적이며 간사한 웃는 얼굴(개인 대 개인)로 품 속에 칼을 간직한(사회 대 사회,사회 대 개인) 관계가 될 것이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제도적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결혼 말이다. 남성들의 형편없는 추락과 그 괘를 같이해 결혼은 경제적 무능력남만 하는 것으로 변질되거나. 완벽한 경제적 독립(공증 같은거)을 보장하지 않는한 (보장된다 해도 결혼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 즐기자~파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 결혼은 어디까지나 마이너스적인 행위로 인식 될 것이다. 계약적 관계가 기반이 된 동거 문화가 자리 잡고 서로간의 책임감이나 의무 따윈 사라져 버릴 것이다. '사랑'이란 가치 또한 퇴색해 버릴 것은 자명한 일이다. 모계제의 형식을 따르지만, 현대 사회의 특징과 맞물려 출산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질 것이며. '가정'이란 가치의 붕괴를 통한 국가적 잠재력 또한 감소할 것이다. 사회 구조가 전체적으로 비안정적이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개판 오분전도 아닌 말 그대로 개판 된다는 소리다. 이 퍼즐이 완성되면. 뭐,앞으로 몇개의 피쓰가 더 있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완성 직전에 와 있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이 퍼즐은 '완성'단계에 들어서도 그 피쓰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며. 완성 된 퍼즐은 다시 뒤엎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개인에 대한 복지 수준은 올라가며 개개인 각자에겐 짐이 덜어진다는 점. 그리고 익숙해져 버린다는 것과 세뇌를 들 수 있겠다. 한국형 변질 페미니즘의 만연과 일반 여성들의 소극적,그리고 적극적인 동조.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들.생각보다 장점이 많은 민족이다. 세계 최고의 책임감과 희생정신. 그리고 애국심. 헌신.배려. 가정 제일 주의. 이것들은 지금까지 우리 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된 원동력이자. 앞으로도 더욱 발전 할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장해 주는 원천이다. 남자,여자. 굳이 따로 구분해놔도 세계 여느 민족들보다 장점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물론,그에 대한 그늘,즉 단점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장점들을 우리 스스로 버리고 있는 형상이다. 그저 그런, 혹은 쓰레기 같은 민족이 될 것이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그들은 이런 사회를 원하는 것일까. 사실,여권을 신장하는데 있어서 좋은 방법들이 많다. 얼마든지 합리적이고 올바른 관념이 내재된 '방법'을 통해 여권을 신장 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더 멋진 사회. 나아가 더 멋진 한국. 나아가 더 멋진 남자,여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갈등을 조장하고,여성의 가치를 깍아내리고 남성들을 쓰레기로 전락시키는 관념을 끊임없이 조장하고 있다. 그들에겐 일반 여성들의 행복,또는 가치. 올바른 사회 같은건 관심 밖인 것 같다. 오직,자신들만의 변질된 페미니즘이 기준이 되며, 자신들의 입맛에만 맞춰서 모든 일을 진행하는 것 같다. 대단한 아집이며 대단한 정신병이다. 때론,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일반 여성들도 자신들처럼 남자들에게 '미움'을 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닐까..하는 유치한 생각도 해본다. 이 퍼즐 조각들이 완성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장점을 간직한 채 단점을 고쳐 나갔으면 한다. 내 주제에 나의 예상이 얼마나 맞을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일련의 흐름들은 확실히 마이너스 행 특급열차를 타고 있다. 다들 내 글을 읽고 진지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으면.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 과잉 페미니즘, 타인에겐 억압일 수도 있다. [펌]아고라의 유명한 논객인 몽테님의 좋은 글이 묻히는것 같아 퍼왔습니다. 호들갑스럽고, 유난떨고 있는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러기엔 이미 놓치거나, 늦어버린건 아닐런지, 더 늦기전에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글이라 생각 됩니다.
2007/01/22 14:49, 논평 스크랩
故김형은씨의 죽음을 모독하는 악플이 크게 이슈가 된 이후 여론은 급격하게 실명제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번 유니 사건으로 인해서 그것이 더욱 가속화가 되겠죠.. 사실 네이버 등의 거대 포털사이트에서 악플은 예전부터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예전 네이버의 이모티콘제도가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의 특수한 정서를 이용하여 일장기를 달고 chosenzing, fishing등의 의도적인 아이디를 달고 자극적인 글을 올려 댓글을 유도하는 식이였죠. 지금은 네티즌 청원등으로 인해 없어진 상태입니다만...
실명제라고 해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닉네임으로 걸고 사용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많은 오해가 있는데, 실제 실명제는 아이디는 그대로 사용하되 아이디 주인의 신원을 확실하게 하자는 것이죠. 주민등록번호나 아이핀 등이 현재 사용하거나 시도되고 있는 신원 확인법입니다.
문제는 현재 가장 악플이 많은 네이버는 이미 실명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daum은 현재 익명제도를 쓰고 있습니다. 현재 가입하는 사람들은 전화번호 인증을 해야되는 등 실명제를 하고 있지만요. 아이피도 추적이 가능하므로 약간은 실명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어쨌든 제가보기엔 다음이 오히려 악플러가 적습니다. 비록 그 실명제가 주민등록번호 도용 등으로 인해 제 구실을 온전히 다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네이버가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악플은 근절되지 않고 있죠. 그렇다면 우리가 악플의 본질적 원인을 잘못 짚은 것이 아닐까요. 싸이월드도 실명제였고 로그인한 사람만 글을 쓸 수 있도록 설정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실제로 악플을 단 사람도 로그인후 글을 썼고요. 이런 경우에 악플을 예방하는 법은 차라리 '싸이 투 힛'을 안보이게 하는 것인데 싸이월드가 그것을 할 리가 없죠. 결국 실명제도 소용 없었다! 이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싸이월드를 익명제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에요. 꼭 필요한 것은 실명제로 하되 (개인 사생활적인 측면이 강한 곳) 모든 곳을 실명제로 하여 입을 막는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저는 악플의 근본적인 원인은 '익명성'이 아닌 '비대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적 대응까지 나올 정도의 악플은 '익명성'이 그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딱히 누구의 명예훼손을 하는 것도 아닌 '일빠'같은 댓글은.. '비대면성'이 더 큰 것이죠. 얼굴을 맞대고 있는것이 아니기때문에 말을 하기도 쉬워지고,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댓글을 주렁주렁 달고 싶어 악플을 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인의 명예훼손을 하는 직접적 비방같은 것이 아닌 사회적인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의도적인 악플은 실명제를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는 결론이 나옵니다. 네이버가 악플이 많은 것은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 이 많은 곳에 악플러는 꼬입니다. 상대적으로 여기 다음 아고라는 소수의 무조건 적인 악플러가 있기는 하지만 제가보기엔 극소수의 메저키스트를 제외한 욕설 댓 글 등은.. 무의미한 것이 아닌, 나름대로의 사상과 생각이 대립하면서 나오는 마찰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네이버의 악플과는 수준이 다르죠. 네이버는 아예 처음부터 욕을 먹고 싶어서 올리는 악플, 소수가 악플, 댓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다음이 현재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정도의 찌질농도는 네이버와 비교하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람이 적기 때문이죠. 그리고 올 사람만 온다는 것이 큰 이유입니다.
악플은.. 어느 사회에나 범죄자가 있듯이 인간의 본성상 제도로 강하게 억누르지 않는 이상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악플러를 처단하기 위해 실명제를 실시 해야 된다는 것은 반대합니다. 그리고 악플의 기준도 모호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비난하는 악플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지만 연예인/권력자들이나 어떤 커뮤니티에서 다수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악플이라고 매도해 버리더군요. 황수정씨의 기사에 달린 글들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진짜 그냥 욕하면서 인간 비하하는 그런 댓글은 무시하고요. 충분히 생각에 따라 복귀를 반대하고 도덕적으로 비난할수 있는데 황수정은 "악플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식으로 대처하겠죠. 다들 그런식입니다.
제가 아고라에 처음으로 올린 故김형은씨의 언론오버에 대한 글의 경우.. 아고라에서는 전체적으로 찬성 의견이 많은듯 하고 메인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며 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종류의 글은 네이버에서 인간 말종이 올린 악플로 취급 당하여 쌍욕을 먹고 고소하겠다! 등의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소수의 견은 감히 펴지도 못하고 버로우해 있던 도중에.. 이런 글이 한번 분위기적으로 대세를 타니까.. 똑같은 네티즌들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극단적으로 반대의 분위기가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누가 옳고 그른지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사람들 나름대로 각자 의견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제가 맞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반론도 나름대로 논리와 소신이 있습니다. 진정한 민주사회는 이런 의견들이 공존하면서 서로를 견제하고 토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쨌거나 악플의 기준이 너무 자의적이라는 것입니다. 말이 나온김에 다음 아고라의 추천/신고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겠습니다. 아고라에서는 추천제도는 있지만 비추천 제도는 없습니다. 추천과 비추천은 여론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지만.. '신고'가 '비추천'을 대신한다!는 생각은 안 드는군요. '신고'는 무조건적인 비방글과, 악성루머와, 광고글들 을 신고하는 것이지 '자신의 마음에 안드는 의견'에 반대표를 던지는 기능이 아닙니다. 추천이 100일때 비추천은 10000일수도 있는것이지요. 그 기능이 daum 에는 없기에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기능을 만들 기를...
아차,, 이야기가 너무 딴데로 샜네요. 주제는 -실명제는 악플을 핑계로 한 정치인들의 입막음-인데.. 제가 좀 횡설수설하긴 했어도 글의 의도가 실명제가 정말로 악플을 근절하는데 효과가 있지는 않다는 것을 행간에서 읽으셨을 겁니다.. 악플의 기준도 모호하다! 는 것과요. 물론 원색적인 욕설과 모욕등은 걸러지겠지요. 이게 사실 처단하자는 악플러의 주요 내용이긴 한데.. 그 취지는 동의하나.. 그 방법인 실명제는 먼지 들어 갈까봐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네이버 말입니다. 악플이 안 좋긴 하지만 언론과 포털에서는 조회수가 광고비용등의 수익과 직결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제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네이버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순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선 아이디가 3개이고 제한 없이 쓸수 있습니다. 또 자기 글에 대한 추천도 다른 아이디로 2까지 올릴 수 있지요. 도용을 한다면 더욱 조작은 쉬워집니다. 또한 이모티콘도 성별을 조작 할 수 있고 얼마 전에는 없던 일장기도 상당히 오랫동안 부작용을 알면서도 방치해서 악플러들을 활개 치게 했죠. 언론도 진흙탕이 될 만한 기사들을 알면서도 계속 내보냈습니다. 남녀 성대결이라든가 하는 것을요. 악플러만 욕하지 말고, 인간 본성을 알면서도 컨트롤하지 못한, 아니 일부러 하지 않은 포털과 신문사의 책임도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실명제 논의는 예전부터 있었습니다만 가장 원하던 집단은 정치인입니다. 자신들에 대한 (사실에 근거한) 비난이나 사실 폭로등은 정치생명을 끝장낼수도 있지요. 그러나 지금까지는 실명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부족하였고 국민적 공감대도 충분하지 않아 '불감청이지만 고소원' 이었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마침 상황이 좋게 터졌지요. 낄곳 안낄곳 모르고 나대던 악플러에 대해 네티즌들의 감정은 저를 포함하여 폭발하였고, 그로인해 실명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정치인들은 좋다고 하겠죠...
올바른 내용이기만 하면 익명이 아니라 실명투고를 해도 떳떳하지 않겠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신분이 드러나면 투고를 하는 사람이 욕을 보는 사회이며, 경찰이 피의자에게 고소인의 이름을 불러주기도 하는 허술한 제도의 나라입니다. 증인 보호는 사실상 유명무실하지요.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 같은 거대포털에서는 자체적으로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지만 다음이나 아니면 작은 커뮤니티에서의 익명제도도 금지한다면 숨통을 다 막아버리는 꼴이 되고 우리들의 입을 스스로 틀어막는 결과를 갖고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화가 안되어 언론이 탄압받았던 사실을 벌써 잊고 있는 걸까요? 지금은 민주화가 잘 되어있지만 만약에 권력의 불균형 이 생겨 독재가 없다는 보장을 확실히 할 수도 없는것 아닌가요?
악플러는 실명제 해도 특정인에게 고소당할 여지가 있는 노골적인 모욕만 사라질 뿐이며, 딱히 처벌규정이 없는.. 그야말로 모호한 규정아래서 활동을 계속할 것 입니다. 악플러에게 유효한 것은 실제적인 오프라인상의 처벌과, 무관심뿐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욕을 먹고자 댓글을 답니다. 그들에게 무서운 것은 욕설과 저주가 아니라 '리플하나 달리지 않는 무관심'입니다. 실명제가 거의 유일한 예방책이라 하더라도,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누가 실명제하면 가장 좋아 할까 생각을 해 보세요.
악플러 하나 잡자고 입에 재갈을 무시겠습니까? 권력과 부조리에 대한 유일한 무기를 말입니다. ★살인을한 당신들은★
키보드라는 그 어떤 무기보다 잔인한 무기를 장착하고 닉네임이라는 그 어떤 가면보다 치밀한 가면을 쓰고 안티팬이라는 철두철미한 정당성을 만들어 악플이라는 너무나도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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